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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망념, 망념이란...
작성자 내원사 등록일 2013-08-20
첨부파일 조회수 3238

망념(妄念), 망념 하지만

망념이란

자세히 관찰해보면 실제 있는 사물이 아니다.

그것이 실로 있는 것 같이 보인 것은 착각 때문이다.

착각은 관찰부족에서 온 것이다.

물에 비친 달 그림자가 실제 있는 것은 아닌데,

만일 실물로 본다면 착각이요, 잘 살펴보지 못한데서 착각했다고 하겠다.

망념도 마찬가지다.

모양도 없는 마음 속에 망념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는 것 뿐이니,

이 망념의 정체를 포착하려고 가만히 망념 속을 들여다 보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목전에 산이 있으면 산인 줄 알고, 물이 있으면 물인 줄 아는 영지가 뚜렷하지 않는가!

이 영지(靈知)가 바로 자기(自己)의 본심(本心)이다.

 

이 본심은 공적하여 일체상이 끊어졌고, 영지하여 혼매(昏昧)하지 않다.

본심은 일체 모든 생각의 근원이요,  일체선악 만법을 갖추어 있고

생사의 시발점이며  종점인 것이다.

여기 붉은 사과가 있다고 하자, 이 사과를 보는데 눈에 눈병이 없고,

그 밖에 장애물이 없는 한, 만 사람이 보면 만 사람이 똑같이 붉은 사과일 것이다.

또 해가 뜨면 밝고, 해가 지면 어둡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남녀노소, 귀천승속의 차별이 없다.

붉은 사과를 붉다하고, 해가 지면 어둡다는 데는 만인(萬人)이 아무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연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도리어 이상하다 하겠다.

당연한 사실을 사실대로 본 것이 본심이다.

당연한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데는 아무런 재주나 기교가 필요치 않다.

재주나 기교를 부리게 되면 도리어 사실을 비뚤게 보게 된다.

사실을 사실대로 본 본심(本心)은 순수무구하여 일체 티라곤 찾아 볼 수가 없다.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고, 천진 그대로 원래의 모습이다.

그런  자리에 무슨 계교사량이 붙어 있겠는가?

그래서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놓아 버리면 본심은 보기 싫어도 보아지는 것이다.

 

이 본심은 끝없는 과거와 끝없는 미래에 걸쳐 무한한 시간 속에 단 한번도 생멸한 일 없는

영원불멸의 존재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과 동서남북, 상하의 공간과  그 속의 모든 생멸은

한 마음속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본심에는 생사니, 번뇌망상이니 하는 것이 붙어 있을 수가 없으나,

마음이 산란하여 공적영지가 온전치 못하면 불안이 싹트지 않을 수 없다.

공적과 영지에 어느 쪽 하나라도 결하면 온전하다 할 수 없다.

공적영지(空寂靈知)의 본심은 영지이면 그대로 공적이요, 공적이면 그대로 영지이니,

공적과 영지가 둘이 아니다.

공적과 영지를 둘로 보는 것은 영지가 되면 산란하여 공적이 결(缺)하고,

공적이 되면 혼침하여 영지가 결하여 온전하다 할 수 없다.

수레의 양바퀴에 하나가 빠진 것 같아서 바로 나가지 못한다.

 

공적과 영지가 하나라야 참된 영지요, 참된 공적이라 하겠다.

참된 영지는 지식분별이 아니니 공적이요, 참된 공적은 무기혼침이 아니니 영지인 것이다.

혼침과 산란이 아닌 공적과 영지가 원만한 마음이라야 심중의 혼침과 산란을 녹이고,

양륜을 갖춘 수레와 같이 똑바로 전진하여 불생불멸의 열반의 언덕에 도달할 것이다.

 

일상생활의 동(動)과 정(靜)에 있어서 행자좌와 하는 것은 뜻에 맡기고,

공적과 영지를 온전히 하면서 혼침과 산란을 녹여 가는 것이 수도 일 것이다.

초심자는 마음이 산란하기 쉬우니, 동과 정에 잘 조절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향(一向)에 動해도 안되고, 일향에 靜해도 안될 것이다.

수도가 숙련되고 동정일여(動靜一如)가 되면 일체 무애가 될 것이다.

공중의 새가 종회무진으로 날더라도 공중에 흔적이 남지 않듯이!

 

- 범어사 방장 지유큰스님 법어집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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